처음 들어본 이름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을 언급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때 알게된 이름이었고, 제대로된 역사를 알고 싶기에 늦게나마 정리해봅니다.

 

이날 추념사에서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다.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 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발언이 정치권에서 공방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약산 김원봉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김원봉 선생에게 국가 유공자 서훈을 주어야 하는지도 논란이 있기 때문이죠.

 

서훈이란?

국가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자에게 주는 정부 포상 제도를 뜻합니다.

 

김원봉은 누구인가?

일본이 현상금을 100만원(현재 가치 320억원)을 내걸 정도로 치를 떨었던 남자라고 들려옵니다.

 

1919년 11월 만주에서 결성된 항일 무장 독립운동단체 '의열단' 을 만들었고

조선총독부에 투탄 / 종로경찰서 투탄 / 다나카 기이치 대장 저격시도등

일제의 심장부를 노리는 항일 무장 독립운동단체에서 맹활약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고

노덕술이라는 친일파에게 잡혀서 고문을 당했고, 내나라 내땅에서 고문을 받는 것을 억울해했답니다.

 

 

그리고 1948년 4월에 남북협상운동 당시,

김구, 김규식이 북한에 올라가서 김일성, 김두봉을 만날때 김원봉도 따라가게됩니다.

김구와 김규식이 남한에 내려가자고 하니

그때 김원봉이 "김구 형님, 저는 남한에 치가 떨립니다. 저 그냥 북한에 있을게요."

북한에 남아 있던 김원봉은 북한 건국을 주도했고 1950년 한국전쟁때 북한군의 장교가 돼서 남침을 했습니다.

 

이렇게 북한에 월북을 해서, 한국전쟁 당시에 남침을 했던 주범이었기에 국가유공자 서훈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보는 시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평가가 이렇게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남한의 역사학계에서는 우리 역사상 최고 독립운동가를 이야기할때,

민족주의계에서는 김구이고. 사회주의계에서는 김원봉이다 라고 평가합니다.

 

한국사를 가르치는 최태성님이 이러한 논란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이념의 문제를 지금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행적의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한 연구를 미래의 후손들에게 잘 전달하자.

아직은 국가유공자 서훈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보다는 그 사람의 과거 행적의 연구가 더 시급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도 그냥 논란이 되었기에 이렇게 알아보는 것이지만, 이렇게나마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 한명을 알게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약산 김원봉 선생을 찾아보면서 유튜브 영상 몇개를 참고하니, 꼭 보시고 우리나라를 있게해준 독립운동가한명에 대해서 알아가시길 바랍니다:D

 

https://www.youtube.com/watch?v=sb8u2jzJeuQ

https://www.youtube.com/watch?v=pfFUewQaE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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